눈 덮힌 계룡산, "아이쿠 엉덩이야!" 뽀다가족, 그리고 겨울

계룡산에서 넘어진 엉덩이가 아직도 아픕니다
(눈 덮인 계룡산에 다녀왔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방향으로 눈이 오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맞는 눈이라 반갑기도 하지만 시야를 가로막는 거센 눈발에 운전하기가 힘이 듭니다. 조금 전 계룡산 남매탑에서 내려오다 넘어져 다친 엉덩이와 삐끗한 오른손 손목도 조금씩 아파오고 있습니다. 동학사에서 1.7km의 짧은 거리라 ‘이쯤이야!’하고 우습게 생각했다가 아주 큰코다칠 뻔 했습니다. 그때는 아찔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납니다.

토요일, 회사 업무를 끝내고 저녁 6시경 독도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차를 타고 방랑사람들이 모여 있는 계룡산 ‘낙원식당’으로 달려갔습니다. 굉음을 내지르는 차 엔진 소리에 불안하기도 한데 또 다음달에 폐차시킬 차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전벨트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8시 조금 넘어 계룡산에 도착하니 이미 두어 순배 술잔이 돌아간 사람들이 저희를 맞아줍니다. 여신님, 여우님, 예진이, 왕녀님, 돌맹이님, 수심결님, 수제천님, 콜라님, 피오님, 노우님, 찐님.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사람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계룡산의 밤이 점점 깊어갑니다.

아침에 집사람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깼습니다. 감기몸살로 함께 오지 못한 집사람이 아들 민석이와 지금 출발한답니다. 저희가 산에 갔다가 내려올 때쯤이면 이곳에 도착하겠네요. 서둘러 사람들과 아침을 먹고 산행준비를 했습니다. 사람들 중 일부는 겨울 산행 준비를 해왔고(왕녀님, 돌맹이님, 수제천님, 찐님) 저를 비롯한 몇몇은 대충 운동화 하나만 달랑 신고 왔습니다. 너무 산을 몰랐습니다.



동학사 일주문


주차장에서부터 1.2km의 여유로운 산책로가 펼쳐진 동학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겨울산의 풍경에 모두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저 또한 산을 별로 다니지 않았기에 온통 눈으로 뒤덮인 겨울산이 이토록 멋있을 줄 몰랐습니다. 일주문을 통과해서 조금 올라가니 누군가 만들어 놓은 예쁘장한 눈사람이 저희를 반갑게 맞고 있었습니다. 어디를 그리 급하게 올라 가냐고 여기서 날 좀 보고 쉬었다 가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눈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 합니다. 저 어릴 때는 동네에 눈만 오면 연탄재를 안에 넣고 눈을 굴려 만든 눈사람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는데 요즘은 전혀 생각지도 못할 일이 돼버렸지요. 이렇게 본 눈사람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네요. 누가 만들었을 까요? 고맙습니다.


눈사람이 저희에게 인사하고 있습니다


동학사에 도착했습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곳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염불소리가 조용히, 하지만 근엄하게 들려옵니다. ‘이 곳에 왔으니 세상의 때 좀 벗기고 가구려....’하는 것 같습니다.



동학사


남매탑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여기서부터는 지금까지의 편안한 산책로가 아닙니다. 가파른 계단이 보이고 미끄러운 눈이 쌓인 길이 보입니다. 한사람이 내려오다 ‘미끌’하더니 ‘쿵’하고 넘어 집니다. 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고 혼났습니다. 그것이 조금 후에 저의 모습인줄 지금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일행들 중에 등산화를 신은 사람들이 미끄럽다고 합니다. 저는 싸구려 일반 운동화인데 하나도 미끄럽지 않습니다. 속으로 비웃으며 ‘등산화도 별 것 아니군!’했습니다.

1.7km, 한 30분이면 금방 올라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길은 생각보다 올라갈수록 점점 미끄러웠고 그만큼 시간도 더 걸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등산화에 아이젠을 착용합니다. 아직까지 저는 올라갈 만 합니다. 사실 올라가는 것보단 내려올 일이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내려가자니 아쉽고, 올라가자니 내려올 것이 걱정이고....

얼굴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숨도 턱까지 올라왔습니다. 헉헉거리며 남매탑을 향해 올라갑니다. 이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남매탑 앞으로 0.6km 남았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일행 중 두 분(왕녀님, 돌맹이님)이 먼저 내려가신 답니다. 오후에 잡혀있는 약속 때문에, 시간상 지금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늦을 것 같답니다. 대신 아이젠을 하나씩 풀어주고 갔습니다. 이때까지도 몰랐지만 이 아이젠 때문에 제가 산에서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기운을 다시 내고 올라갔습니다. 이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평소에 산을 많이 타본 사람들이야 우습게 올라갈 일인 줄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힘이 많이 듭니다. 앞사람 발끝만 보며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남매탑이 눈에 보입니다. ‘휴’ 하고 한숨을 길게 쉬어 봅니다.


남매탑


물 한잔과 준비해간 커피 한 모금 마시고 기운을 차려 하산을 준비합니다. 오른쪽 발에 좀 전에 얻은 아이젠을 착용했습니다. 이제 든든합니다.

온통 눈길인 밑을 바라보니 아찔합니다. 조금 내려왔나요? 조심조심 오른 발에 힘을 주다 왼발을 딛는 순간‘미끌’하더니 가파른 돌 계단위에서 제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곤 엉덩이부터 떨어져서 오른 손목을 짚고 등으로 떨어 졌습니다. 다행인 것은 제가 넘어 진 곳이 좀 평평한 돌이였다는 겁니다. 넘어 지면서 입은 파카잠바가 미끄러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죠. 만약 비스듬한 눈길 위에 넘어 졌다면 밑으로 굴렀을 겁니다. 아찔한 순간이었지요. 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도 없이 오르다니, 정말 미친 짓 이였습니다.

그때부터 내려오는 길은 오른발에 달린 아이젠에 의지했습니다. 거의 기다시피하며 조심조심 내려왔지요. 그래도 10번 이상 넘어질 뻔 했습니다. 아이젠이 없는 왼쪽 발 때문이었지요.

동학사 입구 주차장이 보이고 민박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와있었습니다. 하늘에선 다시 눈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참 오랜만에 많은 눈이 오네요.

2004년 1월 18일
글, 사진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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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tanpid 2004/01/31 12:01 # 답글

    눈사람의 표정이 너무 좋네요
  • 방상철 2004/02/11 11:22 # 답글

    그죠? 정말 오랜만에 본 눈사람이였답니다
  • 파찌아빠 2004/02/19 10:38 # 답글

    혹한기의 무리한 산행은 정말 위험합니다. 생명보험이라도 찐하게 들었다면 모를까...조심 하세요. 항상 준비 하시구요...
  • 방상철 2004/02/19 13:23 # 답글

    네...아주 절실히 깨달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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