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촉석루 기둥에 기대앉아.... 뽀다가족, 그리고 여름

부산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주로 향했다. 진주에 가는 이유는 다녀온 지인들이 좋았다고 열변을 토한 ‘진주성’에 가보기 위함이다. 물론 그 지인 중에는 아내도 포함 돼있다. 결혼 전이니까 적어도 10년이 지났다.

김해, 창원, 마산을 거쳐 진주에 도착했다. 가는 동안 아들과 나는 차 뒷자리에서 열심히 자고 있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갈 때는 어차피 내가 운전해야하니 시간이 날 때마다 차에선 눈을 붙여야한다. 창밖 풍경을 못보고 지나온 것이 좀 아쉽지만 한가지쯤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지.

진주성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자는 아들을 깨웠다. 밖의 날씨가 너무 더워서 내리기 싫을 정도였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차안에 있고 싶어 하는 아이는 아이스크림 사준다는 말에 금방 따라 내렸다. 우리가 차를 세운 곳은 남강 변에 위치한 주차장이다. 진주성 성문을 바라보며 계단을 올랐다.

아내는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나는 아이스크림을 샀다. 그리고 아이에게 줬는데 아이는 갑자기 오줌이 마렵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런데 그새 아이스크림이 녹아 손등으로 끈적끈적한 바닐라가 녹아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의 날씨는 그야말로 폭염이다.

(진주성, 촉석문)

진주성은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과 본성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곽으로 사적 제118호이다. 이 진주성에는 문이 세군대가 있다. 정문은 공북문이라고 하여 성의 중앙에 있고, 진주성의 서쪽 끝부분에 서문이 있다.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촉석루와 의암이 있는 촉석문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출입하는 문이라고 한다.

촉석문으로 들어가니 정면에 촉석루가 보이고, 왼쪽으론 성곽이 둘러져 있는데, 그 너머로 남강의 물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보기에는 시원하지만 작렬하는 태양의 열기에 몸에선 땀이 줄줄 흐르고 있다. 손수건을 꺼내들고 촉석루에 들어섰다. 이 더위에 이 성안을 한바퀴 돈다면 아마 땀으로 목욕을 할 것 같다. 슬슬 걱정이 앞선다.

(촉석루)

촉석루는 경남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진주시의 상징이자 영남 제일의 명승이다. 전쟁 때는 장군이 병졸을 지휘하던 지휘소로 쓰였고, 평상시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고려 고종 28년(1241년) 진주목사 김지대(1190~1266)가 창건한 후 지금까지 7차에 걸쳐 중건 중수 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광해군 10년(1618) 병사 남이홍이 전보다 웅장한 건물로 중건하여 1948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1950년 6.25동란으로 불탔고, 지금 건물을 1960년에 시민의 성금으로 중건하였다고 한다.

촉석루에 오르는 계단은 모두 세 군데이다. 그런데 계단마다 신발이 어지러이 놓여있다. 왜 사람들이 이리 많이 올라가 있는가? 수건으로 목뒤로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가운데 계단으로 촉석루에 올랐는데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소리.

“아! 시원하다!”

정말 머리로 느끼기도 전에 몸으로 시원함이 먼저 전해져, 내 작은 눈이 두 배쯤 커지면서 이 말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분다. 바로 남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참 좋은 곳에 건물을 지었구나. 촉석루 기둥에 기대고 앉았다. 눈이 슬슬 감긴다. 이젠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다. 그저 이곳에 앉아서 이렇게 쉬고 싶다.




아이들은 신나서 뒹굴고 놀고, 어른들은 담소를 즐기고, 연인들은 바싹 붙어 앉아 서로 팔베개를 해주고 앉아서 낮잠을 즐긴다. 촉석루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들은 모두 다 놀라는 눈치다. 모두 한마디씩 한다. 왜 이리 시원하냐고. 염치 불구하고 들어 눕는 사람이 하나 정도 있을 만한데, 그런 사람은 없다. 나도 그저 눕지는 못하고 기둥에 기대고 앉아 고개를 꾸벅거렸다.

그렇게 땀에 젖었던 옷을 말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촉석루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왔다. 촉석루 계단 반대편에 남강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그곳에는 의암과 의암사적비가 있다.

(의암사적비)

(의암)

의암은 모두 알고 있듯이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바위다. 조선 선조26년(1593) 6월 29일,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자 논개는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장을 의암으로 유인하여 순국하였다. 이에 논개의 순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영남 사람들은 이 바위를 의암(義巖)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의암은 물속에 혼자 뚝 떨어져 있는 바위다. 맘만 먹으면 폴짝 뛰어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육지 바위들과 가깝게 붙어있다. 그런데 이 의암이 육지와 붙으면 나라에 큰일이 난다고 옛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다시 의암에서 올라와 촉석루 밑으로 해서 논개의 영정과 신위가 모셔져 있는 의기사에 왔다. 이 의기사는 영조16년(1740)에 경상우병사 남덕하(1688~1744)가 창건한 이래 두차례에 걸쳐 중건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6년 의기창열회가 시민의 성금을 모아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의기사에는 지금 논개의 영정이 없다. 다만 왜 영정이 없는지에 대한 안내문만 있을 뿐이다.)

완전히 촉석루를 빠져나와서 쌍충사적비(경남 유형문화재 제3호)와 영남포정사(경남 문화재 자료 제3호) 등을 둘러봤다. 그렇게 진주성을 돌아보니 대충 1시간 정도 걸렸다. 중간 중간 그늘에 앉아 쉴 때마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쌍충사적비)
(영남포정사)

그리고 우리는 다시 촉석루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 기둥에 기대고 앉아 한 여름의 무더위를 날려버렸다. 이곳에 이렇게 앉아있으니 예전에 목포 유달산을 오르던 기억이 떠오른다. 정상을 향해 오를 때마다 정자가 곳곳에 있었는데, 그 정자에 부는 바람도 지금처럼 이렇게 시원했다.

정말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촉석루 밑으로 내려가고 싶지도 않다. 아! 여기서 여름을 보낼 순 없을까?

덧글

  • 도시애들 2005/07/23 12:13 # 답글

    아마도 논개 사당에 영정이 있어 이곳에 없나?
    이순신장군을 보면 그것도 아닌데..ㅋㅋㅋ
    이곳도 주민의 성금으로...
    장수의 논개생가와 사당도 군민의 힘으로...
    에고..불쌍한 백성들...
  • 뽀다아빠 2005/07/23 12:25 #

    친일화가가 그린 영정이라고 시민단체에서 떼어냈답니다.

    불쌍한 백성들....맞아요.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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