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여행 9. 이화원에서 북경여행의 마무리을 짓다! 뽀다가족의 북경 여행



만리장성에서 이화원으로 오는 차안에서 부족한 잠을 청해봅니다. 여럿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공유하다보니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 좀 피곤하군요. 북경 외곽에서 북경 중심부로 이동하는 자투리 시간이라도 있으니 참 다행이다 싶었어요. 30분 정도 눈만 붙여도 신기하게 피곤이 풀린단 말이죠.

 

이화원은 너무 유명해서 따로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나름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이 있더군요. 바로 서태후가 곤명호를 팠고, 그 흙으로 만수산을 만들었다는 대목인데, 자세히 따져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아래에 이화원의 역사에 대해 정리해 봅니다.

 

1153년 금나라 제 4대 황제인 완안량이 행궁를 설치함

1292년 원나라 과학자 곽수경이 옹산(지금의 만수산) 앞에 하천을 파고 이름을 옹산박이라고 함

1750년 청나라 건륭제 재위 15년에 공사를 시작함. 기존의 작은 하천을 확장하고, 그 퍼낸 흙으로 만수산을 더 크게 만듦.

1764년 청의원이라고 칭하고 황실의 여름 별궁으로 사용함

1860년 제2차 아편 전쟁 당시, 연합군에 의해 불태워짐

1888년 청나라 서태후가 해군 예산을 유용하여 재건하고 이름을 이화원이라 칭함

1900년 의화단 운동 당시, 연합군에 의해 공격당함

1902년 서태후에 의해 다시 재건 됨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2018년 뽀다가족이 이곳을 둘러봄 ^^

 

서태후(1835~1908)1889년부터 죽을 때까지 이곳에 거주했으며, 이화원은 이미 만들어져 있던 곳을 보수하거나 개수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인수전 앞, 기이한 형상의 나무. 우리나라 영흥도 십리포해수욕장에 있는 서어나무가 생각나는 나무였어요.

 

인수전. 서기 1750년 청나라 건륭 15년에 창건. 1860년에 영국,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불에 탔고, 1886년에 재건하였습니다. 이화원에서 인수전은 국정을 다스리고 축하행사를 벌이고, 외국사절을 접견하는 곳이었답니다.

 

기린이라는 희한한 모양의 동상 앞에 가보았습니다. 그 앞에 안내문이 적혀있는데, 한글도 눈에 띄더군요. 중국어, 영어, 한국어, 일어.....이런 순서였어요. 사람이 많아서 사진은 제대로 찍지도 못했네요. ㅠㅠ

 

 

기린, 건륭황제 연간에 주조한 것으로 모양이 기이하다. 용의 머리, 사자의 꼬리, 소의 발쪽, 사슴의 뿌리, 온몸으로 인갑상태로서 전설 속에 상서로움을 표현하는 짐승이며, 악을 누르고 사악한 것을 없애는 역할을 한다.

 

인수전에서 빠져나와 장랑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여기도 안내 표지판이 있네요.

 

드디어 장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좀 찍어보려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이동을 하는 터라 장랑만 찍을 수는 없겠더라고요. ! 정말 관광객 인파가 엄청나네요.


장랑에 그려진 그림들


유명한 명화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똑 같은 게 하나도 없데요.


장랑 앞에 서면, 유명한 곤명호를 볼 수 있습니다.


곤명호에 있는 작은 섬도 서태후가 호수가 너무 밍밍하다고(?) 만들었다고 하네요. 


장랑에서 배훈전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배훈전과 불향각이 눈앞에 보이는데, 저곳은 또 따로 입장료를 내야한다고 해서, 멀리서 보기만 해야 했습니다.

 

배훈전과 불향각

 

장랑 반대편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흔히 이화원 배경으로 많이 보이던 풍경대로 인증샷을 찍었습니다.

 

바로 이곳이죠!

 

이화원도 너무 넓어서 이렇게 얼렁뚱땅 보고 넘어갑니다. 사실 제대로 보려면, 하루도 부족하겠어요.

 

이로써 저희 가족의 북경여행의 공식적인 모든 일정이 끝났습니다. 오늘만 지나면, 내일 아침 저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북경에서의 3일이 너무 짧네요. 언제 다시 올지 기약 없는 곳이라, 더 아쉬운 점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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